호수 위 클래식 선율이 춤춘다 가자, 유럽 예술의 심장 속으로

입력 2022-06-30 16:45   수정 2022-07-01 13:21

여름은 축제다. 거리의 나무들은 더 크고 울창한 잎을 꺼내 그늘을 만든다. 후드득 쏟아지는 소나기는 달아오른 땅과 메마른 풀들을 생동하게 한다. 느리게 지는 해는 또 어떤가. 하늘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라고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다. 사람에게도 자연에도 여름은 그런 계절이다. 달려오던 트랙에서 멈춰 잠시 쉬어가도 좋다는 선물 같은 시간.

인간의 여름을 더 화려하게 만드는 건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음악축제다. 2000년의 세월을 간직한 로마 원형극장에서 듣는 오페라 ‘투란도트’, 호수 위 둥둥 떠 있는 무대에서 즐기는 오페라 ‘나비부인’, 골목마다 흘러나오는 이름 모를 연주자의 모차르트와 슈베르트…. 클래식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유럽의 곳곳에서 즐기는 페스티벌은 꿈 같은 여름날의 기억을 만들기에 충분하다.

코로나19로 멈췄던 축제의 시계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 모차르트가 태어난 도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여름 클래식 음악 페스티벌이다. 알프스의 한 자락, 해발 400m 고지대에 있는 잘츠부르크는 여름에도 시원하고 청명한 동화 같은 도시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잘츠부르크에선 7월과 8월 사이 200여 회의 공연이 도시 전체에서 열린다. 크고 작은 공연장이 있지만 대주교의 여름 승마학교로 쓰이던 장소의 암벽을 깎아 만든 1500석 규모 개방형 극장 펠젠라이트슐레가 압도적 스케일을 자랑한다.

이외에 냉전 속에서도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던 음악가들이 만든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 오페라의 성지인 ‘이탈리아 아레나 디 베로나’, 호수 위 화려한 무대를 선보이는 ‘브레겐츠 오페라 페스티벌’, 영국 클래식 음악의 자존심이자 12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BBC 프롬스’까지 올여름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이들에겐 성대한 축제가 기다린다.

록 음악과 EDM을 원 없이 들으며 젊음의 에너지를 분출하고 싶다면 세계 록 페스티벌과 국내 음악 페스티벌로 떠나자. 지난달 막을 내린 영국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미국 서머페스트와 롤라팔루자, 영국 레딩 페스티벌, 일본 후지 록 페스티벌과 서머소닉 등이 차례로 열린다. 국내 간판 록 페스티벌인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도 올해 3년 만에 대면 축제로 돌아온다.
냉전 속에서도 음악은 꺼지지 않았다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8월 8일~9월 11일
“통영국제음악제를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처럼 만들고 싶어요.”

통영국제음악제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작곡가 진은숙이 밝힌 포부다. 루체른 페스티벌 상주 작곡가였던 그가 ‘페스티벌의 롤모델’이라고 꼽을 만큼 클래식 마니아들에게 루체른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여름 축제다.

평화로운 호수의 도시 루체른은 어떻게 클래식 페스티벌의 중심이 됐을까. 나치가 집권해 유럽 정세가 얼어붙던 1935년. 유대계 연주자들은 생존 앞에서 감히 연주를 꿈꾸기 어려웠다. 이때 이탈리아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음악가들을 루체른 인근의 작은 도시 트리프셴의 바그너 박물관으로 불러 모았다. 이들은 관객 1200명 앞에서 바그너의 ‘지크프리트 목가’를 연주했다.

냉전 속에서도 음악을 포기하지 않는 예술가들의 연대는 많은 이에게 감동을 안겼다. 라디오를 통해 미국에도 전해지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이에 힘입어 연주자들은 루체른의 정식 극장인 쿤스트하우스에서 다시 한 번 공연하며 박수를 받았다. 이후 매년 공연을 이어가며 지금의 성대한 페스티벌로 정착했다. 메인 공연은 ‘빛의 거장’으로 불리는 건축가 장 누벨이 페스티벌 60주년을 맞이해 설계한 루체른 문화센터(KKL)에서 열린다. 축제 기간에는 ‘클래식 버스킹'을 방불케 하는 거리 공연이 활발하다. 도시 어디에서든 음악과 함께할 수 있다.
안네 소피 무터 등 스타 연주자 참여
오는 8월 8일부터 9월 11일까지 펼쳐지는 루체른 페스티벌의 주제는 다양성이다. 그간 백인 남성 중심으로 움직이던 클래식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올해 페스티벌은 보란 듯이 그 벽을 뛰어넘는다. 베네수엘라의 신예 여성 지휘자 글라스 마르카노 등이 낭만주의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여성 작곡가들의 곡을 연주하고, 흑인 작곡가 슈발리에 드 생-조르주, 플로렌스 프라이스의 곡도 청중 앞에 처음으로 공연된다.

안네 소피 무터, 랑랑, 다니엘 바렌보임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참여해 연주로 뜻을 함께한다. 클래식이 ‘있는 자들을 위한 음악이 아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저렴한 가격의 티켓도 새로 내놨다. 페스티벌이 이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음악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용의 산’ 필라투스에 알프스 산맥 관광은 덤
루체른은 산책하듯 걸으며 여행하기 좋은 도시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다리인 카펠교, 프랑스혁명에서 희생당한 스위스 용병을 기리는 빈사의 사자상이 그것이다. 근처의 빙하정원에는 원시시대의 바다에서 지금의 산이 형성되기까지 지구의 지형 변화를 생생하게 간직한 암석이 있다. 스위스의 청정 자연을 만끽하려면 ‘용의 산’이라는 뜻의 필라투스에 오르자. 루체른 도심과 호수, 알프스 산맥이 눈앞에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톱니바퀴 열차가 정상까지 향해 체력을 아끼면서 절경을 즐길 수 있다.
로마시대 원형극장서 듣는 '환상의 목소리'
이탈리아 아레나 디 베로나…9월 4일까지 공연
아레나 디 베로나는 오페라 마니아에게 성지로 ‘추앙’받는 페스티벌이다. 화려한 작품 라인업, 귀를 황홀하게 만드는 오페라 가수들의 아리아 덕분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오페라 축제를 특별하게 하는 것은 장소다. 공연은 베로나의 랜드마크인 고대 로마시대 원형극장에서 펼쳐진다. 서기 30년 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니 로마의 콜로세움보다도 선배인 셈이다.

건축 당시에는 검투사들의 경기장이었지만 이후 쓰임새를 잃고 오랫동안 방치돼 있었다. 그러나 1913년, 경기장의 운명이 바뀐다. 작곡가 베르디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이벤트로 오페라 ‘아이다’를 이곳에서 공연했는데, 뜻밖에 음향이 훌륭해 모두를 놀라게 한 것. 이후 오페라는 물론 연극과 콘서트 등 각종 공연의 무대로 사랑받게 됐다. 2000년 세월을 간직한 극장에 앉아 150년이 넘도록 사랑받는 아리아를 듣는 순간에는 음악 감상 그 이상의 감동이 있다.
아이다·라 트라비아타 등 명작 본다
1913년 이후 1·2차 세계대전 때를 제외하고는 멈춘 적 없던 아레나 디 베로나지만 코로나19 앞에서는 힘을 쓸 수 없었다. 3년 만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페스티벌은 9월 4일까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곡가의 작품으로 꾸려진다. 베르디의 ‘아이다’ ‘라 트라비아타’ ‘나부코’, 푸치니의 ‘투란도트’ 등 명작으로 손꼽히는 대작이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이탈리아가 낳은 최정상급 발레리노 로베르토 볼레의 무대와 플라시도 도밍고의 오페라 갈라 콘서트 등 다양한 공연도 열린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사랑 나누자
베로나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도시를 휘감는 아디제 강, 비옥하고 넓은 토지 덕분에 일찌감치 로마인들이 정착한 까닭이다. 그 덕분에 로마 원형경기장을 비롯해 가비 아치, 마돈나 동상, 고고학 유적지 등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베로나의 최전성기로 꼽히는 때는 13~14세기 스칼라 왕조로, 당시의 유적도 도시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2000년이라는 역사에도 불변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사랑’ 아닐까. 셰익스피어의 명작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베로나다.
호반 위 대형 오페라…한여름 밤의 꿈꾼 듯
오스트리아 브레겐츠 오페라 페스티벌…7월 20일 프리미어 공연 시작
설명이 필요 없다. 비주얼로 압도한다. 브레겐츠 오페라 페스티벌의 무대는 어떤 제약도 없는 가능성의 세계다. 만리장성을 뚝 떼어놓은 듯 거대한 성벽을 쌓기도 하고(투란도트), 카드놀이를 하는 손과 포커 카드를 높이 20m, 무게 40t의 스케일로 구현하기도 한다(카르멘). 특히 비극적인 운명에 처하는 광대의 이야기를 그린 ‘리골레토’ 무대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기괴할 정도의 거대한 크기의 광대 얼굴과 손 세트를 섬세하게 작동시켜 관객은 마치 주인공의 운명을 조종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극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반전시키는 세트는 그 자체로 엄연히 작품의 주역이 된다. 놀라운 것은 이 무대가 호수 위에 떠 있다는 사실.

페스티벌은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세 국경이 맞닿아 있는 콘스탄스 호수를 극장 삼아 펼쳐진다. 공연되는 작품은 모두 고전이지만, 창작진의 감각적인 연출과 파격적인 비주얼 덕분에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보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한다. 이런 스펙터클 앞에 앉으면 오페라가 어렵다거나 지루하다는 생각은 끼어들 틈이 없다.
첫 공연 매진…총 25회 공연 ‘완판’ 임박
1946년부터 매년 여름 열리는 페스티벌은 2년 동안 같은 작품을 선보인다. 올해는 신작을 선보일 차례로, 푸치니의 ‘나비부인’이 무대에 오른다. 앞서 수백 차례 공연된 작품이라도 상상하지 못한 무대를 보이는 브레겐츠의 법칙이니 예상하기는 이르다. 단 예술감독 엘리자베스 소보차는 “스케일보다는 감정에 집중하는 작품”이라며 “호수는 나비부인의 고독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매개체가 될 것”이라는 힌트를 남겼다. 페스티벌은 7월 20일 프리미어 공연을 시작으로 총 25회 공연을 진행한다. 첫 공연은 일찌감치 매진됐고, 나머지도 ‘완판’을 향해 달려가는 중.
베르사유 궁전 닮은꼴, 헤렌킴제 궁전 볼까
브레겐츠는 오스트리아 동쪽 끝에 있는 작은 도시지만, 축제 때는 20만 명 이상이 찾아 숙소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다면 과감히 국경을 넘는 것도 방법이다. 브레겐츠와 10㎞도 채 떨어지지 않은 독일의 휴양지 린다우로 향해 보자. 이곳은 ‘독일 3대 가도’로 불리는 알펜가도가 시작되는 도시다. 480㎞ 길이로 독일 남부를 가로지르는 알펜가도는 독일의 알프스 산맥과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은 마을을 보며 달리는 재미를 선사한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해 만든 헤렌킴제 궁전이 대표 명소.
127년 역사…청바지 입고 듣는 클래식
영국 BBC 프롬스…7월 15일~9월 10일
클래식이 엄숙하고 어려운 장르라고 생각했다면 BBC 프롬스에서 그 편견을 깨보는 것은 어떨까. 1895년 시작한 BBC 프롬스는 무려 12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클래식 페스티벌. 그렇지만 엄숙함과는 거리가 멀다. 축제 풍경만 봐도 금세 알 수 있다. 페스티벌 기간 동안 공연이 열리는 로열 앨버트 홀의 1층 객석에는 의자를 아예 치워 둔다. 관객들은 바닥에 앉거나 서서 자유롭게 관람하면 된다. 격식 있는 옷차림을 요구하는 다른 연주회와 달리 드레스 코드가 없어 청바지 차림 관객도 많다.

축제는 두 달 동안 70여 회의 공연을 선보이는데, 대중적인 프로그램으로 꾸려져 클래식 초보들도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 사실 프롬스라는 이름도 청중이 바닥에 앉거나 자리에 서서 편안하게 음악을 즐기는 ‘프롬나드 콘서트’를 의미한다. 이 겸손한 축제에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출연진이다. 클래식신의 거장과 반짝이는 루키 연주자가 총집합하기 때문이다. 이들 연주에 귀 기울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클래식 음악에 푹 빠져 있을 것이다.
9주 동안 진행…한국 성악가 심기환 무대에 오른다
올해 BBC 프롬스는 7월 15일부터 9월 10일까지 9주 동안 진행된다. 축제의 포문은 베르디의 오페라 ‘레퀴엠’이 여는데, 한국 성악가 베이스 심기환이 무대에 오른다. 사이먼 래틀, 세쿠 카네 메이슨, 유자왕 등 클래식계의 별들이 총출동한다. 조성진의 빈 필하모닉 데뷔 무대에서 호흡을 맞췄던 지휘자 야닉 네제 세갱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참여한다. 이번 시즌에는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을 늘렸다. BBC 라디오와 웹사이트에서 공연을 중계하니 당장 떠날 수 없다면 온라인 관람을 통해 아쉬움을 달래 보기를.
영국 대형 이벤트 많아 볼거리 풍성
올해 초부터 적극적으로 ‘위드 코로나’ 정책을 펴며 관광객을 맞이한 영국은 예년의 관광도시로서 활기를 되찾은 지 오래다. 더군다나 올해는 엘리자베스 2세 즉위 70주년 등 기념할 만한 이벤트도 많다. 축제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오는 7월 말 열리는 커먼웰스 게임 일정에 맞춰 여행 일정을 잡자. 이는 영연방 국가 간 종합 스포츠 대회로, 현지의 뜨거운 응원 열기를 느낄 수 있다.



김보라/김은아 여행팀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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